나는 언젠가부터 막연히 ‘길 위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답답한 일상의 반복을 벗어나,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신선한 공기를 직접 눈과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사무치게 바라던 때가 찾아왔을 때, 나는 더 망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짐을 가볍게 꾸리고,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물론 무모한 도전이라는 지적을 주변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집도, 일정한 수입도 없이 떠도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하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다란 자유로 다가왔다. 전 세계에 흩어진 도시와 시골, 바닷가와 산맥을 오갈 때마다 경험하게 될 유일무이한 순간들에 대한 기대감이 날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첫 발걸음은 가까운 나라로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이웃한 나라나, 배나 기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역들을 우선 둘러보기로 했다. 아무리 자유로운 여행이라도 완전히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초반에는 익숙한 문화권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며 여행 감각을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여행 중에 얻고 싶은 건 풍경만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끌어당기는 부분은 바로 ‘먹거리’였다. 세상 곳곳에 있는 다양한 요리와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배낭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했다. 각 지역만의 전통이 깃든 식사를 맛보고, 혹은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된 퓨전 음식을 만나볼 때면, 내 시야가 확장됨을 느낀다. 미각이 주는 감동은 때로 풍경이 주는 감동 못지않게 강렬하다.
출발 직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상은 형형색색의 음식이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포장마차부터 작은 현지 식당,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 채워볼 수는 없겠지만, 그 찰나에 맛본 한 끼가 주는 설렘이 내 여행의 큰 동력이 될 거라 믿었다. 자유로운 발걸음과 함께, 나는 이렇게 새로운 길 위로 나섰다.
처음 들른 곳은 동아시아의 한 대도시였다. 바쁜 직장인들이 오가는 지하철 역 근처 길가에는 수많은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끌던 음식은 다양한 종류의 국수 요리였다. 우리나라의 국물 음식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깊은 맛을 내는 육수에 면발이 말려 있는 모양이 참으로 정겨웠다. 동시에 생면 특유의 탱탱함과 고소한 육향이 강렬히 퍼졌다. 때로는 담백하고 때로는 얼큰하게, 지역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옆에는 만두나 딤섬류를 판매하는 노점도 흔히 보였다. 손으로 직접 빚은 만두피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입맛을 자극한다. 어쩔 때는 작고 얇은 피에 고기와 채소 소를 꽉 넣어 찌고, 다른 때는 두툼한 반죽에 육즙이 흥건하게 들어 있는 만두를 굽거나 튀기는 식이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의 풍부한 육즙이 톡 터져 나오는 감각은 여러 지역 어디에서든 만두가 사랑받는 공통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는 각 나라나 지역별로 미묘하게 다른 식문화가 반영된 길거리 음식들이 즐비하다. 특히 ‘국수 문화’라 할 만한 공통점이 눈에 띄는데, 똑같이 면을 사용하더라도 양념과 육수, 면의 재질, 곁들여 먹는 반찬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나라이거나 심지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 차이에 따라 차별화된 맛을 낸다는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고 비교해보는 것이 동아시아 음식 여행의 묘미이다.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럿이 함께 나누어 먹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점이다. 국수를 시키면 큰 사발로 나오거나, 만두를 시키면 여러 개가 한 접시에 나오는 식이라 두세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한번 먹을 때 넉넉히 시켜서 여러 종류를 조금씩 맛보는 것이 좋은데, 그렇게 다양한 맛을 음미하다 보면 작은 여행 일지의 한 페이지가 입안에서 생생하게 기록되는 느낌이 든다.
일단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몇몇 한자를 공유하기도 하고,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기도 해서 의사소통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어가 완벽하게 통해야만 진짜 현지 음식을 깊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말이 훨씬 서툴더라도, 현지인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짧은 단어로 감상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뜨거운 면발을 후루룩 들이켜며 “오~ 맛있다!” 하고 외칠 때, 그 지역 사람들 또한 ‘이 사람은 정말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구나’ 하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게 국경과 언어의 벽을 넘게 해주는 건 결국 음식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도시의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몇몇 현지 대학생들과 어울려, 거대한 냄비에 끓는 훠거(중국식 샤부샤부)에 각종 재료를 담가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영어도 짧고, 내가 아는 그들의 언어나 그들이 아는 한국어도 제한적이었지만, 매운 국물을 훑고 올라오는 향신료의 향을 맡으며 나누는 웃음에는 언어가 필요 없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손과 표정을 섞어가며 음식을 나누는 과정은 그 지역 문화에 빠르게 스며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행이 ‘관광지 사진 찍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숨쉬는 생활을 이해하려면, 직접 그들과 음식을 함께 하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나 자신도 점점 더 여행에 능숙해지고, 마음이 열려 감각이 예민해진다. 식탁이라는 공간은 이런 모든 교류의 장이 되어 준다.
동아시아 도시들을 어느 정도 경험한 뒤, 나는 더 아래로 발길을 돌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갔다. 동남아시아는 뜨거운 태양과 습한 공기, 그리고 가볍게 몸을 감싸는 바람이 반겨주는 곳이다. 처음에는 후덥지근한 기후 탓에 몸이 쉽게 지치곤 했지만, 이내 그곳의 음식이 주는 매콤달콤한 유혹에 사로잡혀 활력을 되찾았다. 특히 코코넛 밀크와 각종 향신료가 들어간 카레류, 혹은 레몬그라스, 갈랑가, 카피르 라임잎 같은 향긋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국물 음식은 이국적인 향과 맛을 풍부하게 전해준다.
여행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노천 식당들에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내어준다. 각종 해산물과 채소를 불에 재빠르게 볶아낸 뒤, 피시소스나 굴소스, 혹은 칠리소스를 곁들여 내는 ‘볶음 요리’가 흔히 보이는데, 재료가 신선한 만큼 단순한 레시피라도 풍미가 아주 좋다. 또한, 더운 날씨에 지친 몸을 달래주는 달콤한 과일도 잔뜩 맛볼 수 있다. 망고나 파인애플, 두리안, 용과처럼 흔치 않은 과일들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여행자의 눈이 커진다. 걸어 다니느라 힘든 날에는 길가 노점에서 갈아주는 신선한 과일주스를 마시며 조금 쉬어가는 여유도 누렸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각 지역 주민들의 입맛이 ‘현지화’된 외국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현지식 양념을 가미한 프라이드치킨 체인이 성황을 이루기도 하고, 반대로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현지 음식도 있었다. 이런 식문화의 교류를 보면서, 맛이라는 게 결코 국경으로 완전히 구분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결국 사람들은 입에 맞는다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역 특산물을 베이스로 각자의 레시피를 발전시켜나간다. 이런 다채로움이야말로 음식 문화의 진짜 매력 아닐까.
동남아시아에서 땀 흘리며 매콤함을 만끽한 후, 이번에는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오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은 지역마다 너무도 풍부한 음식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개는 ‘파스타, 빵, 올리브유’ 같은 몇 가지 키워드로 뭉뚱그려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직접 가보니 나라와 지역마다 사용하는 향신료와 조리법이 크게 다름을 실감했다. 특히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경우, 해산물 요리에 방울토마토, 바질, 오레가노 등을 곁들인 간단한 조합만으로도 기가 막힌 맛을 만들어낸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레몬즙이 곁들여지면, 한 끼 식사에 감동이 더해진다.
반면 동유럽 쪽으로 가면 농후하고 육중한 맛의 고기 요리가 주를 이룬다. 추운 기후에서 자라온 전통이 반영되어, 육류와 감자를 푹 익히거나, 각종 피클을 이용해 신맛을 추가하는 식으로 요리를 한다. 또 향신료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문화도 있었다. 예를 들면 헝가리의 파프리카나 폴란드의 고추냉이 소스 등이 인상 깊었다. 그 지역에서만 즐겨 먹는 특색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독특한 향과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마다 다시 한 번 여행자로서의 호기심이 솟아났다.
또한 유럽의 작은 도시들에서는 야외 레스토랑이나 카페 문화가 잘 발달해 있어, 골목골목 앉아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며 식사하는 분위기가 일상화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식사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음식이 나오면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대화를 나눈다.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과 함께 자연스러운 담소를 이어가는 모습은, 내가 살던 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마저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이런 ‘느리게 사는’ 삶이야말로 유럽에서의 진정한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럽 여행을 마무리 지은 후, 중동과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단연코 풍부한 향신료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조리 방식이었다. 사프란과 커민, 강황, 고수잎 등 강렬한 향기를 지닌 양념을 대담하게 사용해, 한 입만 베어물어도 현지의 공기와 모래바람이 함께 떠오르는 듯한 진한 느낌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중동의 카바브나 샤와르마, 아프리카 동부의 다양한 스튜 요리가 떠오른다. 고기를 염장하거나 양념에 재워 장작불 위에서 천천히 구워내거나, 혹은 차분히 뭉근히 끓이는 방식으로 특유의 고소함과 훈연 향을 살려낸다. 거기에 곡물로 만든 빵이나 쿠스쿠스, 혹은 콩류로 만든 퓌레 등을 곁들여 먹는데,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그 풍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종종 손으로 직접 찢은 빵 조각에 고기나 야채 스튜를 얹어 먹으면서 즐거운 식탁을 만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중동과 아프리카의 길거리 음식 문화다. 시장 골목에서 파는 꼬치, 향긋한 차(특히 민트 차)와 달콤한 과자, 혹은 각종 향신료를 잔뜩 섞어 튀긴 간식 등을 맛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와 조리법에 처음에는 생소함이 앞섰지만, 두 번 세 번 시도할수록 점점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의 다양한 풍미를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음식이란 인간의 삶과 생활사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거듭하게 된다.
길고 긴 음식 여행을 이어가다 보면, 가끔씩 엉뚱한 상황에서 옛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도심 어귀의 어느 작은 면요리 가게에서 익숙한 듯하면서도 기묘하게 낯선 국물 냄새를 맡았을 때, 문득 어린 시절 인터넷 플래시 게임에 빠져 밤늦게까지 놀았던 기억이 스쳤다. 그중에서도 순간 스쳐 지나간 키워드가 있었다. 그 이름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 잠시 생각을 곱씹다가,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단어 하나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바로 슈의 라면가게.
당시에는 그저 가볍게 즐기던 플래시 게임 중 하나였다. 어떤 소녀 캐릭터가 라면을 끓여 손님에게 파는 내용이었는데, 생각보다 까다로운 난이도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가 이렇게 세계 각지의 면요리와 스프, 향신료를 접하며 공부하듯 맛보러 다니고 있으니, 새삼 그 게임의 라면 끓이기 시스템이 생각나 살짝 웃음이 났다. 어린 날의 단순한 놀이가 지금의 나에게까지 연결된 작은 조각으로써, 그 추억의 디테일이 뜻밖의 순간에 스쳐 지나간 것은 꽤나 감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내 내가 서 있는 곳, 내가 맛봐야 할 현실의 음식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나는 다시 현재의 여행에 집중하게 되었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지나 조금 더 동쪽으로 이동하면, 거기엔 푸른 바다와 광활한 자연으로 유명한 오세아니아 지역이 펼쳐진다. 이곳은 투명한 바닷물과 때 묻지 않은 산호초, 그리고 아열대와 온대 기후가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 덕분에 신선한 해산물과 농작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휴양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음식 세계를 경험했다.
특히 폴리네시아나 멜라네시아 일대의 전통 요리들은 참으로 독특했다. 바나나 잎에 고기를 싸서 구워내거나, 코코넛 밀크에 해산물을 절인 뒤에 비린내를 제거하는 방식 등은, 과거에 재료나 도구가 한정적이었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서는 서양식 조리법과 결합된 퓨전 요리가 등장해 더 다채로운 메뉴가 탄생하고 있었다.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비교적 큰 나라로 가면, 셰프들이 현지 특산품과 유럽식 조리법을 섞어 개성 넘치는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많다. 예컨대 캥거루 고기나 악어고기, 혹은 키위프루트와 같은 식재료가 메뉴에 사용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 가면 대자연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맛볼 수 있었다. 사람들도 대체로 여유롭고 친절해, 낯선 여행자에게 거리낌 없이 대화를 건다. 그런 분위기 덕에 한 식당에 오래 머물며 셰프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요리 비법을 배우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이를테면 해산물을 최대한 신선하게 보관하는 방법이라든지, 특정 부위를 재빠르게 조리해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살리는 법 등은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으리라.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얻은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들은 때로 반갑게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어떤 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정성 어린 밥상을 내어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 끼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나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도, 함께 먹은 음식의 향과 온도는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렇기에 음식을 단순히 ‘포만감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컨대 내게 작은 해산물을 요리해 건네준 어느 어촌 마을의 할머니는,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에 비해 음식을 건네줄 때만큼은 깊은 애정을 담아주셨다. 자신의 손맛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상대방에게 든든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식탁 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런 식탁을 만나게 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물론 모든 만남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바가지를 씌우려 하거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식사를 통해 함께 웃고 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경계심이 누그러지며 작은 우정이 싹튼다. 그 순간 느끼는 감동은 가이드북에 실린 그 어떤 명소를 방문했을 때보다도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계속해서 길 위를 떠돌면서도 지치지 않고 다음 도시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원동력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늘 끝과 시작이 맞물린다. 한 지역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떠날 때면, ‘이제 언제 또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과 동시에, ‘다음 곳에는 또 어떤 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설렘이 맞부딪힌다. 그렇게 수많은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내 삶은 점점 더 풍요로워졌다. 단순히 뱃속을 채워주는 의미를 넘어, 음식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가령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옥수수 밭과 농부의 손, 그리고 그 옥수수가 조리되어 식탁 위에 오르는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내가 한 숟갈 떠먹는 국물 안에는 많은 이들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다니는 여정 속에서, 그 얽혀 있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맛볼 때마다 문득 겸손해진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누군가가 긴 시간을 들여 밥을 짓고, 누군가는 그것을 먹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돌아보면, 정말 멀쩡한 냄비 하나 끓이기조차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이따금씩 떠오르기도 한다. 여러 나라의 진짜 음식들을 경험해 보니, 때론 그 어설펐던 시절의 ‘장난 같은 요리’ 경험이 한편으로는 소중한 감성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으며, 각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또 누군가에게 내 방식대로 만들어 본 요리를 대접해볼 수도 있겠다. 여행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음식으로 연결된 인연들은, 이 세상을 더욱 따뜻하고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자, 다시 배낭을 꾸려 또 한 번 떠날 힘을 주는 동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맛과 향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마 때로는 원치 않게 실패하거나, 너무 매워 눈물을 흘리거나, 생소한 맛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다 합쳐져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는 법.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에서, 누군가와 작은 식당에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 즐거운 경험을 다시금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음식이 만들어 준 연결고리는 계속해서 확장되면서, 나와 세계를 조금 더 가깝게 이어 줄 것이다.